1.
교도소의 지하에서는 축축한 냄새가 났다. 이 모든 것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다.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 것만 같은 침침한 분위기도, 죄수들을 가두는 차가운 쇠창살도, 수갑을 든 채 복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느 교도관들 마저도.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시나리오'를 완성시키기 위한 소품이다. 나도 그 소품의 일부고.
NPC란 사람들이 간과하기 쉽지만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데 있어 빠질 수 없는 역할이다. 나는 시나리오의 NPC가 되기 위해서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왔다. 왜 하필 NPC를 지망했냐면 글쎄. 탐사자나 KPC같은 주인공의 자리는 너무 주목도가 높으니까. 사람의 이목을 꺼려하는 편은 아니지만 사회에서 시민1의 위치를 유지하며 살고 싶은 나에게는 이 정도가 딱 알맞은 자리지. 오늘 이 시나리오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교도관이다. 물론,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교도관들이 존재한다. 이 커다란 감옥을 지키는 간수가 겨우 하나라면, 아무리 저예산 세션이라고 해도 구색이 안맞다. 게다가 이번 세션은 꽤 힘이 있는 플레이어가 오는 모양인지, 시나리오 대책 위원회의 사람들이 힘이 잔뜩 들어간 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곧 오게 될 시나리오의 탐사자는 이 삼엄한 경비를 뚫고 교도관 NPC 중 몇 명에게 대인 기능을 사용해서 탈출해야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정루트 대로라면 그럴 것이고, 다르게 행동하는 탐사자도 있겠지. 세션은 돌발상황이 많이 생기니까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학교의 교사가 몇 번이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어쨌거나, 일이니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탐사자를 이 시나리오의 끝으로 인도해야할 터다. 첫 임무라 그런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동료 NPC들 몇몇이 소곤거리며 잡담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까, 요즘 플레이어들 중 그런 무리들이 늘어난다는데."
"음? 누군데?"
"그... 뭐냐, 시나리오를 부수는 애들. 말 그대로 시나리오 자체를 부순다고 하더라고. 그 덕에 다친 사람도 꽤 많댔어."
"뭐 어떻게 부수길래 그래? 시나리오 다르게 풀어가는거야 다른 탐사자들도 많이 하잖아."
"그게... 진짜 맵을 부순다거나... 아니면... NPC를 전부 납치해간다고 했어. 아님 죽여버리거나!"
"...뭐?! NPC를 납치해간다고? 그거 좀 심각한 거 아냐? 어, 어쩌면 우리도......"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잔뜩 목소리를 낮추고 이야기하는 두 명의 말을 들으니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요즘 이상한 탐사자 집단이 존재한다는 소문이 있었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 흘려들었었는데... 아무래도 NPC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일인가보다.
"아, 맞아. 그 플레이어의 전용 탐사자가 있는데..."
"그 탐사자는 맨날 포도 사탕을 입에 달고 다닌대. 그 포도 사탕에는 알콜 성분도 들어있다는데. 그래서 늘 술에 꼴아있대! 그리고 얼룩말 같은 머리에 눈을 형광 핑크고 화려해서 눈 감고 봐도 눈에 띈댔어. 여튼, 보면 조심하라고 하더라. 걔가 다녀가면 그 맵이 텅텅 빈다고."
"그래? 근데… NPC를 전부 납치하고 나서 뭘 하는거야?"
"글쎄...? 하지만 안 좋은 곳에 팔아넘기지 않을까? 더 위험한 구역에 떨궈놓는다거나..."
도대체 어떻게 생겨야 머리가 얼룩말 같을 수 있는 걸까. NPC를 납치해간다는 도시괴담 같은 이야기보다 그 쪽이 더 충격적이다. 검은 머리카락에 흰 붙임머리라도 잔뜩 단 걸까? 뭐가 되었든 상당한 관심종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1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타고나길 얼룩말이어도 검은색이나 흰색으로 염색을 했을 거다.
"거기!! 조용히 해. 곧 탐사자가 온다!"
입구에서 고참 NPC하나가 소리를 쳤다. 정말 탐사자가 오고 있는지, 저 쪽에서 누군가가 연행되어 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주위에 있던 NPC들은 모두 빳빳한 자세가 되어 자리를 지켰다. 나도 일단 일은 열심히 하는 회사의 일원이므로 잘 서 있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관들에게 양 팔이 잡힌 탐사자가 들어왔다. ...꽤나 껄렁한 모습이다. 질질 끌려오면서도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웃음만 짓는 게 척 봐도 불량하다,고 생각하는 때에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
'....저게 되네.'
사실 마주친 눈보다 탐사자의 머리카락이 더 시선을 끈다. 검은색과 흰색이 규칙도 없이 멋대로 섞여있는 머리카락은 단순히 얼룩말이라고 표현하기도 어려울 만큼 괴상했다.
"어이! 얌전히 감옥에 들어가!!"
얼룩말의 양 팔을, 아니. 탐사자의 양 팔을 잡은 경관들이 말하자 그는 한번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마저도 불량해보였다. 저 탐사자, 분명 학교를 다녔다면 불량학생이었을 것이다.
"아, 아아~ 팔 아프다니까요!"
도살장에 끌려가는 개처럼 발을 허공에 휘두르던 탐사자가 가리킨 곳은
"저...저 감옥! 저기 들어갈래요!"
내가 담당하고 있는 감옥이었다.
2.
내가 담당하고 있는 감옥 안. 탐사자의 여유로운 하품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분명 여기서 대인기능을 통해 감옥을 빠져나가야 할 텐데... 플레이어도 아무런 선언이 없고, 불량해보이는 탐사자는 지나치게 여유롭다. 무슨 생각인걸까. 혹시 탈옥이라도 하려는 거라면 내가 상부에 보고해야할 일이 늘어난다. 허튼 짓을 하는 건 아닌가 흘긋거리고 있으니 탐사자가 거의 드러누운 채로 데굴거리다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아, 무슨 일이야?"
이상할 정도로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보통 감옥에 갇힌 이의 태도가 저런가? 눈을 마주치곤 히쭉히쭉 웃기까지 한다.
"아하, 나가는지 감시하려고?"
세상에 얼룩말 같은 사람이 둘이나 있을 리는 없고. 이 탐사자가 소문의 그 '탐사자'일텐데... 시나리오를 부수기 위해서 행동하고 있으니 감옥에서 나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거려나.
"그게 제 일이니까요."
"딱딱하긴. 그런 일만 하면 심심할텐데. 별로 어울리지도 않고."
"....? 만난지 몇 분이나 지났다고 그렇게 말합니까."
놈팽이처럼 굴러다니기만 하던 탐서자는 어느새 불쑥 가까이 다가와서는, 철창 사이로 손을 쑥 뻗어서 내 넥타이로 리본을 묶어버렸다. 이유도 없고, 논리도 없고, 의미도 없는 행동들이다. 자기자신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저 인간은 나를 언제 봤다고 어울리니, 어울리지 않니를 말하는 걸까. 내 교도관 연기는 멀쩡했다고.
"으응? 몇 분? 그렇게 짧았나, 긴 것 같았는데~... 어. 근데 언제 두 명으로 늘어났어?"
영문모를 헛소리를 하더니 철창에서 주르륵 미끌어지는 꼴이 영락없는 취객이다. 그러고보니 왜 탐사자가 감옥에 갇히는지를 듣지 못했었는데, 혹시 음주로 인한 난동이었나? 까득. 조용한 동굴 속. 탐사자의 입에서 무언가가 둔탁하게 깨지는 소리가 난다. ...삐죽 나온 막대를 보면 사탕인 모양이다. 술과 함께 고기를 파는 음식점에는 흔히, 입가심을 위해 박하사탕을 두곤 한다. 막대 박하사탕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탐사자는 주정뱅이 꼴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는지 바닥에 드러누워선 아예 벽에 두 발까지 텅 올려버린다. 팔을 들어 고양이 하나, 고양이 둘... 숫자 세는 시늉을 하는 게 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잠에 들기 위해서라면 양을 세는 게 보통이지 않나?
"지루하지? 괜찮아, 괜찮아. 우리 플레이어가 좀... 생각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곧 재미있는 방법으로 이곳에서 나가게 해줄 거야."
술에 꼴아 히죽대는 얼굴을 보니 멀쩡한 방법은 아닐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저렇게 대놓고 메타발언을 하는 탐사자의 플레이어가 평범할 리가 없다. '탐사자'가 악명이 높은 이유는 그냥 조금 많이 돈 인간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하지만 이런 불만을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저 탐사자와 다르게 상식이 있는 NPC다. 적당히 모르는 척 하며 주정뱅이의 헛소리로 치부하기로 했다.
"멋대로 나가게 두진 않을 겁니다."
"아. 너무 판에 박힌 대사 아니야? 그렇게까지 막~ 모범생 같은 대사 안해도 되는데. 쿨계 미남씨. 난 좀 열혈계가 좋아."
흔해빠진 간수 대사나 쳐주자, 관람객으로부터 민원이 들어온다. 불만이면 정신나간 NPC들이 많이 나오는 쿠소개그 시나리오나 가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거기라면 이런 탐사자라도 환영받을지도 모른다. 뭐가 좋은지 마냥 웃고만 있는 탐사자를 한참 노려보고 있으니 곧, 가벼운 주사위 소리가 들려왔다.
"오, 이제 슬슬 결정했나 보네."
늦다. 플레이 중에 밥이라도 먹으러 갔었나. 무슨 선언을 한 건지 탐사자가 나를 보며 손을 까닥거린다. 그보다 조금 더 늦게 눈 앞에 가벼운 창이 떴다.
[탐사자는 NPC와 키스를 하며 매혹을 굴려 이 상황에서 빠져나갑니다.]
말도 안되는 창이 말이다. 다행히도 나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들어도, 더러워진 귀를 씻지 않으면 안되는 병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탐사자가 행동을 하기 전에 NPC가 미리 선언의 내용을 알고 행동할 수는 없기 때문에, 침착하게 모르는 척을 해보기로 했다.
"아하하, 진짜 웃긴다. 키스를 해서 빠져나간대!! 이리와! 얼른 키스하자."
"플레이어는 선언했고, 수호자는 받아들였어. 이건 절대적이잖아?
탐사자는 철창 밖으로 팔을 내밀고는, 내게 오라는듯 손짓했다. 주위의 NPC들이 모두 이곳을 쳐다보고 있다. 그냥 계속 모르는 척 하고 싶었다. 첫 시나리오부터 너무 시련이 크다. 시나리오가 나를 두고 가는 것 같다. 그래도 가긴 한다. 가기는. 수호자는 어째서 이런 선언을 받아들인 걸까. 그동안 공부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재밌을 것 같으니 함 해보세요.'하는 NPC 비친화적인 발언이나 오갔겠지 싶었다. 거리가 좁혀지자 탐사자는 휘적이던 손을 움직여 내 멱살을 잡더니 그대로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아, 참. 나도 운도 좋지. 언제 이런 미남하고 입술을 부벼본담~? 혹시 첫키스야? 그럼 좀 안 미안한데."
가볍다 못해 이미 흩어져 사라질 것 같은 태도다. 마음 같아서는 근력 대항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버티고 서있을 수도 없어서 그대로 끌려가줬다.
"그렇다고 하면 무를 것도 아니잖아."
비록 시나리오에 묶인 부품 같은 존재지만, 상대도 마음껏 메타 발언을 하는데 어떠냐 싶어서 다른 NPC들이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귀엽긴. 어디 가서 자랑해도 돼. 네가 어디 가서 이렇게 해보겠어?"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철창 사이로 손을 뻗은 탐사자는 내 멱살을 다시 잡아 끌어당겨, 입을 ...하아. 그래 입을 맞췄다. 다디단 포도 사탕의 향과 알콜 내음이 훅, 입 안으로 들어온다. 잠시만 참자.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물리려 하니, 이 불량학생 같은 탐사자가 나를 놓아주질 않는다. 아니, 게다가. 잠깐. 멋대로 혀까지 넣고 있다. 이런 것에 면역이 없는 NPC 설정으로 도망가고 싶다. 실제로도 면역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물컹한 것이 입속을 샅샅이 훑고 멀어진다. 정도 이상의 비상식에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다.
"자... NPC 나으리. 이제 꺼내줘야지."
탐사자는 제가 한 행동이 아무렇지도 않은지 불량하게... 그러니까, 어딜 봐도 아직 술주정뱅이 같은 자세로 철창에 머리를 기대었다. 옆구리를 쿡, 찔러 허리춤에 걸린 열쇠를 손가락으로 훑는 꼴이 아니꼽다. 포도사탕, 강하게 느겨지는 알콜 내음, 그리고 술에 꼴아있는 저 자태. 그리고 실수로라도 착각하기 힘들 것 같은 검고 하얀 머리. 이 탐사자, NPC들을 전부 납치하거나 죽인다는 그 탐사자인 게 분명하긴 한데. TRPG에서 판정에 성공한 선언은 절대적인 법이다. NPC인 내가 자의적인 판단으로 매혹...에 성공한 저 사람을 풀어주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까의 선언이나 메타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조금 특이한 플레이어와 탐사자라 이상한 탐사자가 있다고 소문이 부풀려진 탓에 다른 NPC들이 조금 오해한 것일 가능성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누가 봐도 뭔 일을 저지를 것처럼 생기기도 했고. 일단 모든 것은 아직 소문일 뿐이다. 그런 소문을 이유로 시나리오의 진행에 거스르려 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입안에 미미하게 맴도는 것 같은 포도사탕과 알코올의 냄새가 얼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래도 결국, 허리춤의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그동안에도 탐사자는 쉬지 않고, 괜찮았어? 나도 해본 적 없어. 아마도. 같은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를 종알거렸다.
탐사자가 얄미운만치 구르듯 감옥에서 빠져나오고, 아직 정신이 혼미한 내 쪽을 보며 윙크하더니 손키스를 던진다.
"수고했어. 키르니? 맞지?"
그새 명찰에서 이름을 확인한 모양이다. 이럴 때는 특이한 이름이 참 마음에 안 들곤 한다. 별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꺼내줘서 고마,"
말을 끝마지치도 못하고 휘청거린다. 몸을 못움직일 정도라면 술을 안 마셨으면 좋겠는데. 저래 가지고 세션을 끝낼 수는 있을지 의문이다.
"워. 그럼.. 이만 또 봐~!!"
그래도 어찌 비틀비틀 거리며 복도를 나서기는 했다.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보니 기분이 영 찝찝하다. 이제, 시나리오에서 내 역할은 사실상 거의 다 끝났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탈출하게 내버려두다니... 언젠가 #TRPG에서_들은_너무한_대사 따위의 해시태그에 올라갈지도 모른다.
...그런 건 정말 사양이었다.
3.
시나리오 대책위원회. 시나리오가 예상치 못한 사태로 번졌을 시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만들어둔 곳이다. 이제 막 첫 시나리오를 수행했을 뿐인 나는 지금까지 와본 적 없는 장소였다. 놓아주긴 했지만, 그 주정뱅이는 소문의 '탐사자'다. 아직 떠도는 소문일 뿐이라고는 해도, 그 내용이 만에 하나 사실이라면 내 직장이나 다른 NPC들이 위험할 수도 있다. 다소 귀찮은 일이지만... 제보는 해두는 것이 좋겠지. 높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알아서 해줘야 한다. 여기까지만 하고 빠질 생각을 하며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안경을 쓴 여성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여긴 어떻게 왔지?
"이번 시나리오의 탐사자가 소문의 얼룩말인듯 해서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아마도, 대책위원회의 부장인 모양이다. 책상 위에 놓인 직함을 보면. 나는 그에게 교도소에서 있었던 일의 자초지총을 설명했다. 차라리 헛소문은 신경쓰지 말고 돌아가라는 말을 해줬으면 조금 기뻤을지도 모르겠는데, 여자는 이야기를 들을 수록 놀란듯이 눈을 크게 떴다. 불길한 징조다. 푹 내쉬는 한숨도 마찬가지다.
"젠장... 바쿠스가 여기에도 올 줄이야."
"이건 비상사태야!!!"
골치가 아프다는듯 제 머리를 감싸쥐더니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그 탐사자의 이름이 바쿠스였나. 주정뱅이치곤 거창하지만, 적절한 이름이다.
"그 얼룩말의 이름이 바쿠스입니까."
"정확한 이름은 몰라. 하지만 그놈을 알고 있으면 다 그렇게 부르지. 자기가 자기더러 바쿠스의 혁명가라고 말하니까. 그래봐야 일개 테러리스트지만!"
대책위원회의 부장은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많은듯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렸다.
"플레이어가 또라이라 그러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야. 목격담으로는 탐사자의 '플레이어'가 탐사자의 말을 따르고 있는 것 같으니..."
이게 바로 책에서만 봤던 '컨트롤러를 놓친' 상황인가보다.
"플레이어가 그 바쿠스의 혁명가를 그런 식으로 설정하지 않았는데도요? 대책...은 있나요? NPC들이 위협을 받는다고 하던데."
"그으래. 그런 식으로 설정하지 않았는데도.. 자세한 건 나도 잘 몰라. 락 하는 악마 수녀라느니 3일 전에 파일을 잃어버린 대학원생 컨셉 따위로 캐릭터를 짜는 놈들은 자주 봤는데! 대책은 짜고 있지만... 그 '바쿠스'라는 테러 단체의 리더격인지, 그놈이 매번 NPC들을 모조리 납치해가서 뭘 내보내도 그렇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주로 플레이타임이 긴 시나리오들을 돌아다니는 걸로 보아 시나리오를 끊고 다른 날에 이어가는 그 간격동안 무언가를 하는 걸로 보이는데..."
"대책을 세우기엔 실상, 목격담이 적지. 누가 말하러오겠어, 전부 납치되는데?"
테러 단체의 리더라고 하는 걸 보니, 그 여자 말고도 다른 조직원도 있는 모양이었다. 단순한 유희라고 하기에는 스케일이 너무 크다. 납치에 살인이라니. 탁에서 NPC가 시나리오의 진행을 위한 소품과 같은 것이라고 해도, 세션 밖에서는 엄연히 하나의 사람으로서 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었다. 연극의 단역 출연자들. 그 짧은 순간을 위해서 지금까지 준비해오고 기다려왔을 텐데. 메타발언을 꺼리지 않고 해대는 걸 보면... 그 바쿠스의 혁명가는 npc들을 자신이 즐기는 게임의 부속품 정도로 여기고 있나 싶을 정도다.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글쎄. 쉽게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보아온 세계는 좁았다. 밖의 사정 같은 건 알지 못한다.
"그럼 아무 것도 할 수 없나요."
"암만 그래도 손 놓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
대책위원회의 부장은 제 턱을 만지작거리다가 무얼 생각한 건지 눈썹을 들어올렸다. 뭔가 의심스러워하는 눈이었다.
"그런데 그 녀석을 어떻게 알고 신고하러 왔지? 만났는데 이렇게 멀쩡히 올 수 있는지..."
"교도관으로서 만났습니다. 매혹 판정...으로 빠져나갔고요."
"매혹...? 뭐... 꼬셔졌다고?"
"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대충 설명했었는데, 꼭 이렇게 물어온다. 대책도 없으면서 도움이 안되는 대책위원회다. 그래도 일을 전혀 안하는 건 아닌지, 뭔가 뒤적거리며 확인을 한다. 월급값은 하려는 건가.
"...리베르테라고 했나?"
"키르니 데미안 리베르테입니다."
"그런 사소한 건 넘어가! 아무튼, 이걸 읽어보니까. 너, 탐사자랑 키스를 했다고 했지? 실제로 접촉도 하고."
"...좋아. 너한테 모든 걸 맡기겠다!"
"? 네?"
저 사람은 진지한 표정으로 지금 뭘 말하는 거지. 아마도 플레이로그인 듯한 것을 팔랑팔랑 흔들며 말하는 게 진심인 모양인데. 오늘따라 비상식적인 일을 자주 보는 것 같다.
"탐사자의 모든걸 샅샅이 조사해 와!! 그리고 탐사자를 막아! 탐사자에게 딱 붙어지내란말야, 키스까지 했다며?! 탐사자한테 반한 척을 해서라도 같이 붙어있어!! 알았지!!"
그러고는 버튼형 도청기와 이어셋까지 던져준다. 이거, 일 떠넘기기 아니야. 신입에게 이런 거 시키지 말라고. 그래도 일단 받긴 했다. 사회 생활이란 원래 이런 거라고 하던데. 나는 별로 적성에 맞지 않는 모양이다.
"난 KP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겠다. 보고서를 올리고 KP가 실제로 탁을 끝낼지 이어갈지를 결정하는데는 시간이 꽤 걸리니까. 다른 NPC들에게는 내가 말해두겠다. 반드시 탐사자가 헛짓거리 하지 않도록 잘 감시하고 통제해! 실패하면…"
"너도 나도 죽은 목숨이야!! 알겠어?!"
죽으려면 그쪽만 죽지 왜 나까지 끌어들이는 걸까. 나는 당신처럼 감투를 쓰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 대책위원회 부장, 정말 대책이 없다.
"...혼자 통제하는 건 무리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그게 쉬웠다면 대책위원회가 손도 못 쓰고 몇 번이나 당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요. 뭐라도 쓸만한 카드를 더 주십시오."
"만난 사람 중에 납치당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사람은 사람은 네가 거의 유일하니까 말이지. 거기다 너도 물어봤지 않나? 대책이 있냐면서. 없으니까 뛰어다니면서 이제 긁어오는 수밖에!"
나는 포기가 빠른 인간은 아니지만, 힘만 빼는 무의미한 행동이 무엇인지는 안다. 더이상 이야기를 해봤자 말이 통할 것 같지는 않다.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나는 신입 NPC일 뿐인데. 내 회사가 블랙인 것 같다. 어쨌거나 일을 떠맡았으니, 부장이 던져준 종이쪼가리라도 살펴보기로 했다. 이 정도 일이면 위험수당이라도 더 줘야 하지 않나? 종이에는 바쿠스의 혁명가에 대한 설명이 몇 자 적혀 있었다. 그 사람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늘상 술에 취해있는 것처럼 마냥 사람이 몽롱하다고 한다. 매일 먹고 있는 사탕에 알콜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는 추측이다. 손놀림이 빠르고 재빨라 무엇이든 잘 훔쳐가고, 곧잘 금지품목에도 손을 댄다. 별로 도움이 안되는 내용 뿐이다. 지금까지 조사를 하긴 한건가 싶다. 회사 생활은 둘째치고... 어쨌거나, 납치범이 납치를 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하다. 그 부장이 하는 걸보니 대책위원회를 믿어서 될 일도 아니다. 터덜터덜,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대책위원회의 건물을 나섰다.
무능한 정부 아래의 시민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을 푹 내쉬고, 다시 내 자리로 향하려는데... 우뚝. 누군가 내 앞에 멈춰선다. 얼룩말 같은 머리. 바라보니, 형광 핑크색의 눈동자가 웃고 있었다.
"안녕! 또 만났네?"
"아~ 잘 되었다. 어차피 너한테 가려고 했으니까."
"...나한테는 왜?
꼭, 저를 신고한 것을 알고서 찾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느리게 깜빡거리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건물 뒤 쪽으로 쭉 밀어버렸다. 몇 발자국, 인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곳까지.
"너, 나 누군지 알지?"
이야기처럼, 나를 납치하러 오기라도 한 걸까.
"주정뱅이잖아. 바쿠스의 주정뱅이."
그 이름을 담는 것은 그의 질문에 대한 충분한 답변이 되었을 것이다. 모른다고 내빼기에는 그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온 것 같았다.
"눈치챘구나. ...라고 하긴 너무 대놓고 생기긴 했어. 그치?"
"사실, 이걸 말하려고 찾은 게 아니라. 네가 방금 시나리오 대책위원회에서 나오는 걸 봤거든."
어지간히 멍청하지 않으면 모르지 않을 이를 만나고나서, 평범한 NPC라면 가지 않을 곳에 갔다. 훌륭한 정황증거다. 탐사자는 무슨 속셈인지 느린 걸음으로 내 주변을 빙, 반바퀴 돈다.
"...별로 숨길 생각도 없는 것 같은 외관인데.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나도 납치해 가게?"
"그건...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간지나잖아."
그는 자기 머리카락을 한 번 찰랑! 자랑해보인다. 나름대로 위기의 순간인데, 저 가벼운 태도 때문에 긴장감이 흩어질 것만 같다.
"으음, 그러게. 어쩔까. 확 납치해서 길러버릴까. 그것보다~ 흠. 나 신고할 거야?"
"얼룩말이? 지금까지 납치해간 NPC만 해도 충분히 많지 않아? ...아니. 아직은."
다 알고 온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아니면, 떠보는 건가. 비록 이 구역의 미치광이 같은 태도를 내내 일관하고야 있지만, 상대는 꽤 유명한 테러리스트다. 내가 부정하고 싶어도 제공받은 정보가 그랬다. 납치니, 살인이니 하는 단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걸 보면 적어도 수많은 이들에게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아직까지 잡히지 않을 만큼의 재주는 있다는 뜻일 테고.
"안 멋있어? 뭐, 그쪽은 눈에 띄지도 않고 무난해서 이해 못할 것 같긴해."
"많은가? 잘 모르겠네. 난 욕심이 많아서 말야."
그래. 욕심이 적은 사람이라면 저런 과한 모습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잘 생각했어. 신고 안 하는게 좋을 거라고 경고해주러 왔거든. 좀 전에 너 나랑 키스했을 때 기억해? 그 때 네 혀 밑에.. 폭탄을 하나 넣어뒀거든."
"그 욕심 다른데 썼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사람들을 모아서 뭘 하려고? 그들이 네 소유물도 아니잖아. 주정뱅이의 아무 생각없는 주정은 아니었나보네. 그래서, 하고 싶은게 협박이야?"
"알아서 뭐 하게? 너무 많이 알면 날 따라와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는 손가락으로 내 어깨즈음을 쿡 누르더니 그대로 손을 미끄러트렸다.
"이런 걸 좋아하진 않는데... 네가 안 들어주면 협박. 아니면 그냥, 알려주는거지. 크기야 콩알만하지만, 그거 하나 터지면 네 목은 홀랑 날아갈걸. 그러니 맘대로 뜯으려고 하지마. 그러면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니까."
허튼 짓 말라고. 알았지? 알코올기가 남은 목소리로 작게 속삭여 덧붙인다. 세간에서는 이런 걸 협박이라고 하는데. 이 주정뱅이는 그런 상식은 배우지 못했나 보다. 뭐가 그리 좋은지 빙글 웃고만 있었다.
"아,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날 좀 도와줘야겠다."
하지만 협박은 적어도 허언은 아니었다. 입안을 살펴보니, 정말로 이상한 버튼 같은게 느껴졌으니까. 떼어내려 든다면 아마도 저 탐사자는 폭탄의 버튼을 누를 것이다. 머리가 날아가고 싶은 게 아니라면 적어도 보이는 곳에서 시도하는 건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겠지.
"내가 너무 많이 알지 않아도, 너는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할 것 같은데. 모두가 이유가 있어서 납치한 건 아니잖아. 협박이란 게 나의 반응에 따라 결정되는 건 아닐 텐데. 네, 의도를 밝히는 말이잖아. 다른 NPC를 납치하는 일이라면 별로 협조하고 싶지 않아. 나는, 그런 일을 싫어해."
'그' 탐사자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눈이 가늘어진다. 범죄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상하게도 납치니, 실험이니 하는 것엔 유달리 기분이 나빠지곤 했다. 눈앞에서 목숨줄을 들고 협박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런 이미지인가. 뭐. 답은 안 할래. 네가 한 번 내 생각 해 봤으면 하거든. 잘 들어주면 아무것도 안 할거야. 정말로. 나도 협박엔 재능이 없거든. 대부분은 협박하기 전에 끝나서."
그러니까,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이미 협박이라니까. 대답을 하지 않자 한동안 적막이 흘렀다. 무엇을 고민하는 걸까. 말을 고르는 듯 우두커니 서있기만 하는 모습이 어쩐지 낯설다. 워낙 조용할 틈이 없이 천방지축 까불던 인간이라 그런가.
"알아. ..그래 보여. 그런 걸 시킬 생각 없으니 안심해. 누굴 죽이라고 시킬 생각도 없어. 사소한 거니까 그냥 좋다고 해 보는 건 어때?"
사실 오늘 처음 만났으니 이미지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 그 '처음'이 좀 강렬하기는 했지만. 이런저런 소문을 포함해서. 동료들이 말하던 것들이 마냥 헛소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직접 증명해주고 있으니까. 부풀려진 소문을 역으로 이용해서 써먹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무고한 존재는 아니란 거지. 그런 인간은 혀 밑에 폭탄 같은걸 심었다고 협박하지도 않는다.
"뭔지 먼저 말해줘."
내 역할은 어떻게든 이 탐사자에게 붙어서, 무엇을 하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원래라면 상종할 일 없이 지나갔겠지만, 지금은 목적이 있었다. 이쪽이 협박보다 확실하게 나를 움직이는 동기였다. 탐사자가 노는 한 손으로 제 머리카락을 휘적휘적 꼬며 힐끔 쳐다본다. 협박이 통하지 않고 있다고 여기는 걸까. 시선이 불길하게 내 몸 이곳저곳을 훑는다.
"싫어. 대책위원회 앞에서 낱낱히 보고하는 사람이 어디 있담."
"다른 데로 가면 말해줄 생각은 있고?"
"적어도 지금은 없는데. 흠~ 좋아. 그럼. 네가 퇴근하면, 곧바로 날 찾아와. 알겠지? 물론 대책..어쩌고한테는 비밀로 하고. 그럼 알려줄게."
대책위원회는 바쿠스가 시나리오와 시나리오의 사이에, npc들을 납치해간다고 했다. ...사실 지금 그의 태도는 수상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지만.
"알았어."
받은 임무도 있고 하니까. 어쩔 수 없지. 위험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뻔히 보이는 수작질이라면 사자의 입에 머리를 들이밀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애초에 저는 영웅도, 지도자도 아닌 평범한 이 세계의 주민에 불과했으니까. 내가 납치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해야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역시 알면서 내버려두기는 좀 그렇고. 아무 것도 감수하지 않는다면 얻을 수 있는 것도 없다. 역시... 무력한 건 싫다. 탐사자는 알겠다는 내 말에 대놓고 기분 좋은 얼굴을 했다. 계획대로 흘러가면 기쁘기야 하겠지. 그는 내가 제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내 볼을 쿡 찌르고는 말했다.
"착해. 키르니. 이렇게 순순히 알겠다고 할 줄은 몰랐는데. 사실 모험을 즐기는 편인가?"
아니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데. 내가 뭐라고 할 틈도 없이 스르륵 몸을 내뺐다. 여러모로 폭풍같은 인간이다. 조금 지쳐서 멍하니 있으니, 아까 대책위원회의 본부장에게서 받은 이어셋에서 그의 음성이 들려왔다.
[다녀와. 그리고 낱낱이 보고 해라. 버튼형 도청기는 계속 가지고 다녀.]
[폭탄에 대해서는 이쪽에서 알아볼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단 수상하지 않게 탐사자의 말을 따라.]
[저녁에 탐사자를 만날 때 우리 쪽에서도 요원들이 갈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도록.]
납치범을 저지하긴 해야 하니 일을 받아들이기는 했는데, 이런 식으로 명령질을 하니까 어쩐지 아니꼽다.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껄끄럽지만... 혀 밑에 폭탄을 두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중국 시나리오 시간에 배웠던 참을 인 자를 떠올려 본다. 참을인, 참을 인, 참을 인. 세 번이면 퇴사를 면한다고 했다.
...역시 짜증난다. 걸어나오다가 문득 짜증이 치밀어 올라서 널브러져 있는 의자를 걷어찼다. 이 망할 블랙회사. 언젠가 퇴사하고 말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주섬주섬 의자를 다시 일으켜서 제 자리에 놓았다. 의자는 잘못이 없다. 잘못된 것은 그 주정뱅이와, 대책위원회 뿐이다. 우선 돌아가서 쉴까. 플레이로그라도 계속 확인하면서. 어깨가 무거웠다.
4.
몇 시간이 지난 뒤, 세션이 중단되었다. 그 동안의 플레이로그는 참혹했다.
[중화기 판정 해봐도 되나요? 뭔가 보여드릴게요.]
[불을 지르겠습니다.]
[농담이에요.]
아무리 봐도 농담으로 보이진 않았었다. 이 탐사자는 세션 중에도 테러리스트의 본능을 숨길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중단된 세션의 다음 일정은 내일로 되어 있다. 물론 이 다음이 아예 없을 수도 있겟지만... 일단은 돌아갈 시간이란 뜻이다. 근무가 끝났으니까. 하지만 내 일은 끝나지 않았다. 탐사자를 찾아가야 하니까. 추가근무 수당은 제대로 주려나. 마트에 들러 치한 퇴치 스프레이를 사고, 이어셋도 보이지 않게 잘 착용하고, 버튼형 도청기를 단다. 대책위원회 놈들은 사실 믿을 수가 없다.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 이제 납치범에 절도범에, 협박범, 테러리스트를 만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그랬는데.
'안 보이네.'
그 머리라면 어디에서든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일인지. 아무리 살펴보아도 나타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근처의 NPC에게 인상착의를 말하며 물어봤지만, 본 적도 없다는 이야기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까먹고 집에 갔나... 술에 취한 상태니 정신이 없어도 그러려니 싶지만, 자신을 골탕먹인 것 같아 괘씸하기만 했다. 진짜, 퇴근이나 해야지. 돌아가서 케이크나 먹어야겠다. 허망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어쩐지 무겁다. 그야... 그런 엄청난 일에 휘말리게 되었는데 누군들 피곤하지 않겠는가. 로바롸봐 베이커리의 케이크를 사든 채로 집 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여는데,
"안녕~ 늦게 왔네?"
안그래도 피곤한데 더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이 거기 있었다. 너무 믿고싶지 않은 나머지, 집밖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까지 했다.
"두 번이나 보고 싶었어?"
뻔뻔하게 손을 흔들어대기까지 한다.
"...여기 내 집인데."
"그래서 들어오면 안돼? 아."
납치범에 절도범에, 협박범, 테러리스트. 거기에 불법 침입자인 인간은 뭔가 잊고 있던 걸 떠올린 얼굴을 하더니 주섬주섬 신발을 벗는다. 예의를 차리기엔 너무 늦지 않았나? 나는 침침하게 케이크를 테이블에 올려두곤... 그래. 집주인답게 슬리퍼를 던져주기로 했다. 느리게 슬리퍼가 날아가는 소리가 나고, 철퍽. 어딘가에 맞았는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케이크 맛있..."
내 케이크를 노리던 무뢰한이 응징당한 모양이다. 그러게 마음을 곱게 썼어야지. 당당하게 모르는 척 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 인간이 상당히 뻔뻔한 성격에, 짜증날 정도로 신출귀몰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제 집인양 자연스럽게 앉아있으니 새삼스럽게 어이가 없다. 키스하는 척하면서(한 건 맞지만) 입 안에 폭탄을 심어두는 사람이니 남의 집에 침입하는 것쯤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겠지. 지금도 봐라. 누가 보면 제 집인 것처럼 거실을 휘적휘적 걸어다니고 있지 않나. 침대 베개를 콕콕 찌르면서 이거 너무 좁다고 말하지를 않나. 침대는 평범하게 1인 사이즈다. 목숨을 가지고 협박해오는 상대라고 해도 알아서 설설 기는 건 성미에 맞지도 않다. 그렇다고 과하게 자극할 필요야 없겠지만...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하면 목이 날아가기 전에 눈에 치한 스프레이라도 뿌려줘야겠다.
집에 오는 길에 샀던 딸기 케이크를 꺼낸다. 이곳의 케이크는 생크림이 니글거리지 않고 부드러운데다 산뜻한 맛이 난다. 딸기도 싱싱한 편이고.. 저...사람도 주긴 해야겠지... 접시를 두 개 꺼냈다. 제게도 케이크를 주려는 걸 눈치 챘는지 탐사자가 슬그머니 테이블 가까이로 다가온다. 준다는데 감사히 먹을 것이지, 어쩐지 뚱한 얼굴을 한다.
"맛있다! 이거 어디 거야? 나중에 가봐야지. 그나저나, 생각보다 늦게 들어오네. 원래 이 시간에 퇴근해?"
그러고는 무슨 심술이 났는지 제일 가운데에 있는 딸기를 집어먹어버린다. 초등학생인가? 이 사람은 분명 자유분방하게 자란 막내일 것이다. 먼저 딸기를 먹으려는 오빠가 있다면 머리에 막대사탕을 던졌겠지.
"가게 이름이라면 적혀있잖아. ...케이크도 사고, 그 쪽도 찾아다니고 했으니까."
"음, 음. 오늘 걸어다니면서 본 곳이네. 기억했어."
세션 중에 가보기라도 하려는 건가. 왠지 로바롸봐 턱시도 베이커리 파티시에의 신변이 조금 위험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와중에 오냐오냐 자란 막내 테러범은 자연스럽게 홀케이크의 반을 먹어대고 있다. 심지어 제가 집 주인인 것처럼 찬장을 뒤적거리며 내 손에 포크를 쥐여주기까지 한다.
"후후. 네가 날 속여먹으려 드는 것 같아서, 괘씸해서 기다리라고 말해뒀지! 골탕 좀 먹었어~?
"별로."
"어디보자... 지금도 그 발칙한 물건들이 품에 있으려나."
탐사자는 능청스러운 얼굴로 내 입에서 포크를 빼내가고는, 착 달라붙어서 내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져댔다. 그런데 이 탐사자는 왜 이렇게 힘이 센 거지? 주정뱅이라 그런가. 벽에 밀린 몸이 답답한데 와중에 주머니를 뒤지는 손은 프로페셔널하기 그지 없다. 아까부터 자꾸 목적성 명확한 추행을 당하는 기분이 든다. 아니, 기분이 아니라 사실이다. 지금 탐사자의 범죄 이력에 한 줄이 추가 되었다.
"이게 뭐야, 내가 치한이야?"
"맞잖아."
결국 성추행범은 내 품에서 치한 퇴치 스프레이와 버튼형 도청기를 꺼내갔다. 사실적시인데 뭐가 불만인지 눈썹을 씰룩이다가, 스프레이는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버튼형 도청기는 발로 밟아버린다.
"다이스가 정한 거잖아? 내 탓은 아니지?"
결백하단 얼굴로 눈 깜빡거리다 은근한 얼굴로 옆구리를 콕 찌른다. 추행은 방금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어때. 그 사람들이 내 이야기 잘 해주디? 뭐라고 해줬어? 궁금하다. 좀 들려줘"
"다른 방법으로 판정을 시도했다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겠지. 주정뱅이 테러리스트라고 해주던걸. 자칭 바쿠스의 혁명가였나."
폭탄을 심으려고 그 방법을 고른 거겠지. 기행으로 위장하면서.
"내가 시킨 거 아냐. 난 매혹보단 설득을 더 좋아하거든. 단지 플레이어가 뭔갈 보여주려고 했던 것 뿐이야? 테러리스트? 틀린말은 아니네. 물론 난 두번째 이름을 조금 더 좋아하긴 해. 멋지지 않아?"
입꼬리가 실룩 올라가는 게, 테러리스트란 단어가 마음에 드는듯 했다.
"멋을 부린 이름으로 본질을 흐리고 포장하는 거라면 그다지 끌리지는 않네. 내용물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장미는 장미란 이름이 없어도 향기롭겠지만, 다른 것에 장미란 이름을 붙인다고 장미가 될까. '혁명가'를 자처할만한 일은 하고 있어? 테러리스트 씨."
"끌리지 않다니 아쉬운걸. 네 평을 보니 걔들이 딱히 좋게 말하지는 않았나봐. 내용물이 뭔지도 모르면서 장미니 뭐니 말해도 괜찮으려나 몰라. 궁금하면 확인해볼래?"
"그래서 물어봤잖아. 혁명가를 자처할만한 일을 하고 있냐고. 내 눈 앞에서 테러라도 하려고?"
케이크를 먹겠다고 빼두었던 사탕을 흔들거리다가 우물우물 먹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막대를 당겨 사탕을 입 안에서 빼버렸다.
"그래서 나도 물어 봤잖아. 보러 갈래? 하고..아!"
"내 거야."
테러리스트 겸 기타 범죄 이력 다수의 탐사자가 내게서 사탕을 다시 뺏으려고 허우적거렸다.
"내 집에서 알코올은 금지야."
"쩨쩨하긴."
"술 좀 깨지 그래."
"취하는 건 내 맘이야!"
이 조그마한 사탕에 알코올이 들면 얼마나 들었다고, 그렇게 흥청망청 취하는지 모르겠다.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 아이처럼 몸통박치기를 하더니, 소리를 지르다가 옆구리에 매달려온다. 공격을 하건, 매달리건 둘 중 하나만 해주면 좋겠다.
"그래서, 갈 거야 말 거야?"
"주정뱅이가 그렇게 좋아? ...갈게. 가만히 있는다는 보장은 못하겠지만."
"좋아서 하는 건 아닌데. 미리 말하지만 다른 해코지는 안 해. 그냥 나가서... 어디 좀 구경만 하면 되거든. 거기 가면 아마 다 알 수 있을 거야."
"자, 나가자!"
탐사자는 슬리퍼를 훌렁훌렁 발로 차 벗어던졌다. 침대 옆에 놓은 제 신발을 꿰어 신고, 창문에 올라탄다.
"세상의 진실을 보러."
"세상의 진실을 보는데 꼭 창문으로 나갈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여기가 술 권하는 사회라도 되는 모양이지. 많은 주정뱅이들은 그렇게 변명하곤 했다. 어린 왕자에 나오던 그 술 주정뱅이도 비슷한 말을 했다. 다른 걸 먹으라고 친절하게 딸기 사탕으로 바꿔 주었다. 나의 배려심도 모르고 미운 7살의 탐사자는 포도 사탕이 자기 원픽이라며 기어코 사탕을 입에 문다.
"이렇게 가야 간지...나기도 하고, 원래 여기로 나가는거야. 너 히어로 만화 같은거 본 적 없니?"
탐사자는 내 집의 창문에 반쯤 발을 걸치고는, 손을 뻗은 채로 킬킬거렸다. 시나리오도 끝났는데 이렇게 연출할 필요가 있나 싶다. 과장된 연출 탓일까. ...어쩐지 이 손을 잡으면 더이상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없을 거라는 본능적인 불안이 스친다. 동시에 기묘하게도 손을 잡지 않으면 중요한 것을 놓칠 것만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배트맨은 창문으로 안나가는데."
손을 잡는다. 결국 안정보다 미지를 탐구하는 것이 본능이어서. ...그런데, 이 이후에는 뭐 어떻게 할 생각이길래 창문으로 나가려는 거지? 갑자기 불길함이 훅 느껴진다. 혹시...
"음... 눈 감고, 꽉 잡으렴."
"...뭘 하려고."
"따라온다며?"
"여기, 1층이나 2층이 아닌 건 알고 있지?"
"키르니. 번지점프 좋아하니? 너랑 해보고 싶었는데."
혹시가 역시나였다. 탐사자는 그대로 창문을 열어버리더니, 나를 끌어안은 채로 그 밑으로 뛰어내린다. 미친걸까. 여기가 몇 층인데. 바람이 빠르게 볼을 훑고 스쳐지나간다. 나는 결코, 결코. 줄 없는 번지점프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사탕 좋아해?"
"싫어하진 않는데."
"먹는 게 좋을걸. 미리 말해주는 거야."
포도 막대사탕이 입에 쑥 밀려들어온다. ...것보다 추락하는 중인데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거야? 보여준다던게 사후세계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폭, 하고 어딘가에 착지했다. 정확히는 나를 안고 있는 이 인간이 어딘가에 착지했다. 나와 탐사자를 가로지르는 시원한 바람이 느껴진다. 동시에 보들보들한... 털도 같이, 느껴졌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매달려 있었다. 아니, 이걸 누군가라고 할 수 있나? 살펴보니 그것은 기묘하리만치 등의 털이 부숭부숭한 생명체였다. 다리가 여섯 개 정도인 그것은 사람 하나 정도의 크기로, 딱정벌레같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간다. 각각의 다리에는 삐죽삐죽한 흡반들이 매달리고, 간혹 지직거리는 소리가... 이건 뭐지? 내가 알고 있는 생물이 맞나?
가만히 보고 있으니... 입 안에서 알코올이 훅 올라온다. 머리가 좀 띵한 것도 같다. ...그냥 음, 좀 큰 벌레인가 보지.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안고 있는 탐사자는 내 머리카락을 인형처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때 .잘 보면 나름 귀엽지"
"네 미의식의 세계는 잘 모르겠네."
"자주 보니까 난 귀엽게 느껴지던데. 너도 나중엔 익숙해질지도 몰라."
"...그렇게 여러번 타지도 않을 것 같은데."
"응? 아냐. 여러번 탈걸. 그러고보니 내가 왜 도와달랬는지 말을 안했던가."
탐사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내 볼을 쪼물딱거리며 늘려대기까지 했다. 놓으라고 하면 내 몸을 놓을 것 같아서 일단 얌전히 있었다.
"널 스카우트 하러 왔는데."
"...? 테러 단체에?"
"안 돼? 잘 어울릴 거야. 어쩌면 천직일지도? 애초에, 그게 아니라면 테러 단체의 수장이 교도관 나부랭이한테 왜 집착하겠어."
"... 테러단체의 수장이 처음 만난 교도관 나부랭이한테 스카우트를 제안할 만한 이유도 사실 없어보이는데..."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자. 그냥 맘에 들 수도 있지? 간택당했다고 생각해."
그렇다고해서 이렇게 영문을 모를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아들일 정도로 정신이 혼미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 이런 식으로 NPC들을 꼬여 빼내는 건가? 아니, 하지만. 어느 정신 나간 NPC가 테러리스트가 스카우트를 한다고 홀랑 꼬여서 빠져나가겠는가. 그것도 한두명도 아니고. 탐사자는 태연한 태도로 뒤를 넘겨다보며 벌레 같아보이는 그 생물체에게 어떤 주소를 소곤거렸다. 아마도, 우리의 목적지일 것이다. 스카우트에 동의하지 않으면 쥐도새도 모르게 묻어버리려고 데려가는 건 아닐 거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얼굴 옆으로 달이 스쳐지나가고. 곧 짧은 비행은 끝이 났다. 탐사자의 말에 따르면 '세상의 진실'이 있는 곳에 드디어 도착한 모양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곳은 공장지대였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몇몇 공장단지는 아직도 가동되고 있었다. 주위에는 물자를 수송했는지 거대한 트럭들이 몇 대 놓여있다. 탐사자는 주변을 살피더니 한 공장의 출입문을 잡았다.
"여기부턴 조심해야 해. 은밀행동, 있니?"
"응. 별로 쓸 일은 없었지만..."
"좋아. 우린 지금부터, 진짜 혁명가스러운 일을 한다. 그리고 그건 기존 지배계급에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일이지."
탐사자는 들뜬 건지, 취한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사탕을 한 개 더 물고선 내게 모자를 하나 씌웠다. 몰래 공장에 숨어들어가는 게 혁명가스러운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존 지배계급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일이란 건 확실히 맞는 말 같다. 그러니 대책위원회 놈들이 바쿠스 이름만 들어도 뒤집어지지.
공장 안에는 방금 전에 보았던 것과 같은 사람만하고, 털이 부숭하고, 날개가 달린... 그러니까, 신화생물이 몇 마리 보였다. 탐사자는 몰래 발을 움직이고는 CCTV라도 피하려는 건지 벽에 찰싹 붙었다. 그러곤 쉿,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입술에 검지를 얹고는 앞의 방을 가리킨다.
"이 방의 이름은 보관실인데. ...같이 들어가자, 그리고 판단해."
대체 무엇을 보여주려는 건지는 몰라도, 탐사자가 말하는 '진실'은 이 안에 있는 모양이었다.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리고 보관실 안으로 따라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사람들이 모여앉아 훌쩍거리고 있었다. 팔과 다리는 족쇄에 묶여있고, 어딘가를 다친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들어온 우리를 보고도 별다른 반응조차 없었다. 나는 탐사자를 보았지만, 그는 내 쪽을 보지 않은 채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나는 여기서 다른 일을 해야 해. 저 앞쪽에서 뭘 하고있을 테니까..."
"볼 일 다 보면 들어와. 알았지? 몸조심하고. ...아까 숨는 거 보면 나보다 잘 했으니 별로 걱정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그래."
그러고는 바로 앞의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나는 아직 상황파악조차 덜 되었다. 우선 방안을 살펴보기로 할까. 덜컥.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 몇몇 사람들이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대부분이 묶인 사람들... 그 뿐이다. 이곳에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요."
그 중 한 사람에게 말을 걸어본다. 그는 내가 말을 건 것에 잠시 겁을 먹은 기색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그냥 저는…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오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그런데 이상한 사람들한테 납, 납치되어서는, 이 곳에 왔어요."
"이상한 사람들이라면...?"
"몰..라요. 처음 보는 사람들이에요. 만난 적도 없어요. 이상한, 이상한 사람들이 이 곳에 들어와서 사람 몇 명씩을 빼다가 저 문 안으로 들여보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며, 며칠째인지 모르겠어요. 무서워… 집에 가고 싶어요…"
처음에는 바쿠스의 소행인가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렇다면 그가 내게 이런 풍경을 보여줄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의 복장의 공통점이나, 특징이 될만한 외형은 기억나지 않습니까."
"그냥 평범하게 생겼어요. 공통점도 모르겠어... ...그, 그런데 당신은 왜 안 묶여있는 거에요? 저희를 구해주러 오셨나요? 그런 거지요?"
"예, 아마도."
나는 이 사람들이 이곳에 있는지조차 몰랐다.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하지만 어느 누구라도 이런 식으로 갇히고 묶여있을 이유는 없다. 그래서 대답했다. 구하러 왔다고. 그래도 상황 파악은 필요한 법이다. 여기는 분명 시나리오 안이고, 대책위원회에서 운영 중인 곳일 텐데... 납치된 NPC기라도 한가?
"그런데... 당신들은 납치된 NPC입니까?"
"NPC요..? 그건 게임에나 나오는 거 아닌가요? 그게 뭐예요?"
훌쩍거리던 이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묻는다. 연기에 너무 충실했나. 그냥 직설적으로 말하기로 했다. 바쿠스의 소행일 가능성이 아직 존재하기도 했고.
"여기가 어딘지는 아십니까. 저는 그러니까... 시나리오 대책위원회에서 바쿠스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시나리오 진행이 아니니까 편하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시나리오... 뭐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에요? 바쿠스도 모르고,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 대책위원회는 경찰 같은 건가요? 맞죠?"
하지만 바쿠스가 납치해온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에서 시나리오와 NPC, 시나리오 대책위원회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납치한 사람들이 기억을 지우기라도 한건가. ...정보가 좀 더 필요했다. 안으로 들어가볼까. 바쿠스가 사라진 문을 바라봤다. 몸을 움직이기 전, 보관실의 사람 하나가 내게 손을 뻗었다.
"저, 저… 저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다시는 나오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조심하세요..."
...문 앞의 문구를 본다. 세뇌실. 무엇을 세뇌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상당히 뒤숭숭한 방이란 것은 확실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세뇌실에는 이상한 수면기계 같은 은 것들이 줄지어 놓여있었다. 기계의 앞에는 개개인별로 모니터가 늘어져있다. 먼저 들어간 바쿠스가 저 앞쪽에서 컴퓨터를 만지고 있는 게 보였다. 무엇이 나오고 있는 걸까. 조금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각각의 모니터에는 한 사람의 일생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어린 아이부터 시작해서, 성인, 혹은 그에 준하는 나이가 될 때까지의 시간이. 평범하게 태어나고, 학교로 가서, 친구들과 놀고, 공부하고, 삶을 영위하는 모습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바로 옆에는 수면기계같은 것에서 물이 보글보글 올라왔다. 무언가 있는 것 같은데.
수면기계를 들여다보니, 그 안에서는 사람들이 잠들어 있었다. 눈에는 안대를 쓰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채로. 입 안에 호스와 관을 단 채로. ...무슨 상황인거지. 이건 꼭, 마치. 불길한 기운에 고개를 모니터로 다시 돌렸다. 수면기계에 비춰지는 사람과, 모니터 속의 사람은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모니터에 비춰지는 한 사람의 일생은 기계 안의 사람과 같은 나이의 모습이 되면 처음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키르니. 내가 하는 말 믿을 거야?"
어느새 불쑥 제 옆까지 다가온 바쿠스는, 내내 물고 있던 사탕은 버렸는지 빈 입으로 입을 달싹거리다가 내게 물었다. 들어서는 안될, 들어야만 할 이야기란 직감이 든다.
"...말해봐."
"이 시나리오에 존재하는 NPC들이나 탐사자들은 모두 여기 태생이 아니야. 전부 끌려온 것들이지, 아까 그 방, 보관실이거든... 거기 있는 사람들 봤지. 납치당해서 이 곳으로 온거야."
바쿠스는 말을 정리하려 하는듯 간간히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여기는 세뇌실인데, 사람들을 세뇌해서 자기가 시나리오의 NPC가 되기 위해 평생을 교육받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
"... ... 누가, 납치를 하는데."
어쩌면 이미 답은, 알고 있었지만.
"누구겠어? 여기 인간들. 시나리오 대책위원회의 사람들이나.. 그런. 어쩌면 그 사람들도 여기 끌려와서 이러고 있는 건지도 몰라. 아무튼.. 그렇게 끌고 와서는 모두를 저기 모니터에 나오는 영상처럼. 본래의 삶에 대한 기억은 전부 꽁꽁 묶어놔버리지. 그리고 사람들은 실제로 그렇게 믿고 행동해."
"내가 그랬고, 네가 그랬듯이. 믿어지니?"
그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진지한 투로, 그렇게 말했다. ...짐작했다. 짐작했는데.
"별로 믿고 싶지야 않지만."
지금까지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말들이다. 세상의 '진실'이라는 건 언제나 그렇듯 이렇게 쓴 맛이 난다. 여태껏 살아온 시간은, 기억하고 있는 일들은, 너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은 만들어진 영상이고 조작된 과거란 것을 누가 받아들이고 싶을까. 누구에게나 피하고 싶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 너는 테러리스트니까, 시나리오를 파괴하는 이단아니까, 대책위원회 본부가 규정한 '적'이니까. 내게 거짓을 보여주고 현혹하고 속이려드는 것이라고 생각해버려도 될 터였다. 외면은 안락하다. 결국 '시나리오'란 하나의 꿈과 같아서 보이지 않는 가시는 나를 찔러오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게 되는 것은 안정이나 안락 같은 것이 아니라 어떤 속임도 기만도 없이 오롯한 하나의 진실이어서. 시선을 돌리는 것만큼은 싫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또한 조작된 과거에 의해 부여된 성질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장미는 장미란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고 해도 향기가 난다고 한다. 하지만 장미가 아닌 것을 장미라 부른다 해서 향기가 날까. 본질을 흐리고 포장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다고 내용물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거짓 삶을 외면과 안락으로 감싸 선물해준다고 해도 기꺼울리가 없지.
"믿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고 있다. 수면 기계에 비추어지고 있는 사람의 모습. 방에 묶여있던, TRPG나 NPC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들. 진실이란 이런 식으로 손으로 만져지는 형태로 쉬이 나타나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너를 보았다. 그래. 네가 여기까지 나를 데려왔구나.
"뭐.. 시민 1 정도로 살고 싶어하는 꿈이 있는 사람이라면 믿고 싶어하지 않을까 잠시 고민해보긴 했는데."
바쿠스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능청스럽게 옆 모니터에 몸을 기대었다. 샐쭉 웃는 얼굴이 이제는 그리 얄밉지 않았다.
"너 하는 거 보면 시민 1이나 그런 평범한 것과는 거리가 좀 있어 보여서."
"내가 이제 여기서 할 건, 세뇌를 멈추고 사람들을 구하는 거야. 집으로 돌려보내는 거지. 사실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어. 시나리오의 NPC들을 납치하는 것도 사실 납치 따위가 아니라 원래 집으로 돌려보낸 것 뿐이거든. 그리고, 여기서도 그 일은 변하지 않을거고."
"일단 너는 저 앞으로 들어가있어. 너까지 들키면 곤란해지거든. 난 여기서 할 일을 더 하다가... 따라갈게?"
그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조그마한 칩이었다. 등을 돌린 바쿠스는 칩을 어딘가에 꽂더니, 기계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원래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데려온 거야?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도울게."
거짓, 세뇌, 기만. 이런 것들은 거부감이 들었다. 모두 부수어버리고 싶을 만큼. 바쿠스는 내 쪽을 잠시 휙 돌아보더니, 입을 벙긋거렸다.
"...가고 싶으면 보내줄게. 도와주진 않아도... 좋지만. 그렇게까지 도와주고 싶다면야, 사람들 꺼내는 것 좀 도와줘."
두어 번 버튼을 누르자 영상이 멈췄다. 이내 수면 기계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덜컥덜컥 열린다.
"여기서 사람들을 꺼내면 돼. 물 안 묻게 조심하고. 찝찝하잖아."
그의 말대로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기계 밖으로 빼내었다. 옷 소매가 젖어들어가지만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다. 몇 번, 밖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던 것도 같다. 기절한 사람들을 전부 빼내어 기계 옆에 눕히자, 바쿠스는 기지개를 쭉 켰다.
"나 이제 바로 옆방으로 갈거야. 따라올 거지?"
여기까지 와서 이견이 있을 리는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따라 옆 방으로 이동했다. ...안은, 흉흉한 공간이었다. 한쪽 벽면은 무기들로 도배되어 있고, 다른 쪽 벽면은 책장으로 되어 있엇다. 앞에는 의자가 몇 개 있는데 모두 핏자국이 묻어있다. 왜 이런 것들이 있는 거지. 몇몇 의자에는 사람들이 앉아있다. 바쿠스는 그 사람들 역시,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옮겨주었다. 익숙해보이는 태도였다.
"여긴 별로 볼 거 없어. 막... 중요한 거 놔두는 덴 아냐."
"그래."
용도는 어렴풋 짐작할 수 있었다.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진다.
"넘어가, 넘어가자. 너 이런 거 싫어하잖아?"
"싫어하긴 하는데..."
그런 내 기분을 눈치챈 건지 바쿠스가 내 등을 떠밀었다.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관찰력이 좋다고 해야하나. 배려심이 있는 건가.
"사탕줄까?"
"나는 레몬 맛이 좋아."
"레몬 맛은 없는데... 대신 이런 건 있어."
그가 보여준건 내 집에서 바쿠스가 부쉈던 도청기다. 박살이 나서 형태를 알아보기조차 힘들다. 배려심이 있다는 말은 철회해야겠다.
"먹으라고?"
"먹을 수 있으면?"
양심은 있는지 내 시선을 피하며 옆 방으로 가버린다. 사탕을 달라고 떼 쓸 나이는 지났기 때문에, 별 말 없이 따라가기로 했다. 방에는 모니터와 각종 CCTV의 영상이 비춰지고 있었다. 책장에는 여러 파일들이 꽂혀 있었다. 지금은 관리자가 자리를 비운 건지 아무도 없었지만. 은은한 모니터의 빛 가운데서, 바쿠스는 망설임없이 직진해 컴퓨터를 만지작거렸다. 조금 침침한 얼굴이긴 했지만.
"여기서 또 뭘...찾아봐야 하니까 마음대로 뒤져도 좋아. 음, 그렇다고 진짜 위험한 거 뒤지지는 말고..."
"아 맞아. 내 말이 아직도 안 믿기면... 이거 볼래?"
"뭔데?"
바쿠스는 손가락으로 모니터의 구석을 눌렀다. 시선을 옮기면, 오늘 낮에 만났던 시나리오 대책위원회 부장의 데이터가 떠 있었다. 잊기 힘든 블랙기업 상사의 얼굴이다. 옆에는 이전 NPC 생산 공장에서 NPC를 생산해냈으며, 공적을 인정받아 현재 시나리오 대책 위원회의 부장이 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은 사람이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명확한 증거다. 여기 어딘가에 나나 저 바쿠스에 대한 정보도 있을까. 몸을 돌려 책장을 뒤졌다.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파일이 가득하다. 하나를 빼어 보니, 첫 장에는 한 사람의 일생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후에 늘어지는 것은 사람들에게 행한 세뇌기록. 주로 이 곳의 NPC로써 살아가게끔 교육받고 자랐다는 이야기다. 그 후에는 어떤 시나리오의 NPC로 배정되었다는 내용이 마지막이었다. 내 이름도 있을까 해서 찾아봤는데,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언제부터 여기 왔었던 걸까. 이전에는 어디서, 어떻게 살았을까.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파일을 책장에 도로 꽂아넣으니, 어느새 바쿠스가 내 옆에 다가와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난 지금부터 여기 있던 사람들을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려보낼거야. 대신 나 혼자서는 안 돼, 네 도움이 필요해. 그래줄 수 있어?"
그렇게 말하는 바쿠스의 목소리는, 의문형의 문장을 말하는데도 어쩐지 그래줄 거라 확신하는 투였다. 나를 모르는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는 것처럼.
"그래. 그런데 너 이름이 뭐야?"
"이제와서 통성명? 너무 늦었다고 생각 안하니? 안 알려줄거야. 계획부터 들어보렴. 일단 내가 문지기들의 이목을 끌면, 네가 바깥으로 묶인 사람들을 데려가 내 동료들한테 넘기는 거야."
"아니. 통성명을 하자기보단, 여기서 찾아보려고. 알았어."
"음. 족히 몇십명은 넘는 사람들 사이에서? 뭐... 그래. 행운을 빌게."
아무튼 이름을 알려줄 생각은 없는가보다. '간지'나는 이름 어쩌고 하면서 바쿠스의 혁명가 같은 이명을 쓰는 걸 보면, 본명이 사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그나저나 이목을 끄는 역할이라니. 바쿠스는 본인의 적성을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어쩌면 이목을 끌기 위해 그 얼룩말 같은 머리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좋아. 그럼 시작하자고... 넌 아까 그.. 보관실의 사람들이랑, 우리가 건진 사람들을 데리고 이 곳에서 나가서 바깥에 있는 내 동료에게 인계해. 내가 여기서 주의를 끌게. 위험할 순 있겠지만 괜찮아. 난 한 대 맞으면 두 대 패는 사람이거든!"
익숙한 일인듯 바쿠스는 내게 커다란 쇠사슬 절단기를 던져줬다. 대체 이런건 어디서 공수해온 거지. 아무튼, 나는 바쿠스와 바깥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 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보관실로 향했다. 그들에게 그러겠노라 말하기도 했었고. 곧, 바쿠스가 무언가를 건드린 듯,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경보가 온 사방에 울려퍼진다. 내가 꼭 탐사자라도 된 기분이다. 그런 피곤한 자리에 가고 싶진 않지만. 무사히 은밀행동 판정에 성공하고, 가는 길에 세뇌실에 널브러져 있던 사람들가지 모조리 챙겨갔다.
"무, 무슨 상황이에요? 이게 뭐예요?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갑작스럽게 울린 경보음에 사람들은 적잖이 당황했나 보다. 내가 들어서자마자, 겁에 질린 목소리로 질문세례를 퍼붓는다.
"집으로 돌아갈 겁니다. 가야죠."
"집, 집으로요? 갈 수 있나요?"
혼란스러워하던 사람들은 몇 번이나 술렁술렁거리더니, 이내 입맞추어 구해달라 아우성을 벌였다. 나는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바쿠스에게서 받은 절단기로 사람들을 구속하고 있던 쇠사슬을 끊었다. 조금 진정한 사람들을 모아서 바깥으로 향하고, 바쿠스의 동료란 사람이 어디 있나 주변을 살폈다. 둘러보면, 거대한 유통트럭에서 내려 이쪽으로 손짓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구해온 사람들을 그에게 넘겼다. 오래 갇혀있었던 데다, 겁에 잔뜩 질려 있어 좀 더 진정이 필요해보였다.
"수고만흐십니다! 그쪽이 새로 들어온 단원인가요? 이 분들은 제가 안전하게 댁까지 모시겠습니다. 걱정마세요! 자, 자, 그쪽도 얼른 타십쇼! 괜찮아요! 전 베스트 드라이버니까!"
금발의 청년이 붙임성 좋게 말을 걸어온다. 아니라고 대답할 틈도 없이, 그는 충성 표시를 해보이며 트럭에 사람들을 하나 둘 씩 태웠다. 나도 얼결에 조수석까지 끌려갔다. 옆의 남자는 껌을 씹으며 운전대를 이리저리 돌려댔다. 베스트 드라이버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트럭이 매끄럽게 길을 빠져나간다. 한참 정적만이 울려퍼지다가, 옆의 남자가 말을 이었다.
"그러고보니 그 쪽은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슴까? 지원?"
"스카우트요."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일단 스카우트를 받긴 받았다.
"우와, 대단하네요!! 저 바쿠스씨께서 누군가를 스카우트 하는건 처음 봅니다!! 엄청난 분이신 것 같네요!!"
"매혹 판정으로 꼬셔졌을 뿐이니까요."
엄청 대단한 것을 보는듯한 눈빛에 사실을 말해줬다. 그러니까, 이용할게 미안해서 스카우트니 뭐니 한 소리를 한 게 아닐까 싶다.
"...? 그.. ..아? 꼬셔지셨...그렇군요..."
"농담입니다."
"농...농담이죠? 그럼그럼요~ 그 분이 설마 그렇게까지 했을 리가...있나? 아니, 아니지. 아무튼! 저는 레임이라고 합니다. 지원했고, 운전 수치가 높아서 여기서 드라이버 역할을 하고 있죠!"
너무 서먹해하는 게 눈에 보이길래, 잠시 사실을 부정해주기로 했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다. 하지만 바쿠스는 평소에 대체 어떻게 행동하는 건지, 제 단원에게도 묘하게 이미지가 이상한 것 같았다. 바쿠스'님'이라고 부르는 걸로 봐선 나름대로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 같은데, 부하에게서까지 의심을 받아서야.
"어쩌다가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까? 평범한 동아리는 아니잖아요."
"그게, 저는 바쿠스 씨가 이전에 해방시켰던 시나리오 구역의 NPC였거든요. 진짜 그게.. 완전 멋있어서 돕고 싶다고 자원했어요! 멋있잖아요, 바쿠스!"
순순히 멋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기에는 추태를 너무 많이 봐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조차 계산된 걸 수도 있겠지만... 아니다. 그래도 그건 좀 아니었다.
"그 사람 왜 매일 취해있는 건가요?"
"그... 저도 잘 몰라요. 항상 그러셔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보아하니 평소에도 술 주정뱅이인 모양이다. 바쿠스가 왜 그렇게 술에 꼴아 살고 있나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는 넘기고, 좀 더 유용한 질문을 하기로 했다.
"바쿠스는 언제 결성된 단체입니까? 지금까지... 본 걸로 생각하면, 납치된 사람들을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하는 것 같던데."
"아주 오래는 되지 않았다고 알고 있어요. 한...반년? 아니다. 그것보다는 좀 덜 되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바쿠스에 대해선 잘 아시네요! 역시 스카우트 당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걸까~"
"납치된 이들이 원래 살던 곳으로 가는 거죠?"
"그럼요. 어디보자... 전 이곳 사람들을 본래 살던 곳으로 보내야 해서 이대로 비포장도로를 건너서 차원의 틈새가 있는 곳으로 갈 건데, 아, 그쪽은 중간에 내려야해요. 바쿠스님께서 픽업해가실 거라서!"
"그렇군요."
레임과 이야기하고 있으니, 곧 차가 멈추었다. 주위는 어두컴컴한 숲길이다. 저 곳에서 당장 마녀가 나오는 시나리오가 시작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음. 다왔습니다. 여기서 만나면 되실 거예요!"
"예, 감사합니다."
부우웅-. 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떠나고. 나는 어두컴컴한 숲 속에서 바쿠스를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도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는 게 맞긴 한가. 그렇게 생각할 무렵, 저 멀리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비쳐왔다. 까만 자동차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후, 운전석의 창문이 열리고 여전히 눈에 띄는 모습을 하고 있는 바쿠스가 윙크를 하며 엄지를 세워 타라고 말했다.
"진짜 기다렸네!"
"응. 여기서 내리라고 하길래."
"집까지 데려다줄... 벌써 탔구나. 벌레에 탈까 싶었는데, 네가 사탕은 레몬 사탕이 좋다고 그러길래."
"무슨 관계야...?"
"너와...? 벌레와...?"
공장에서는 좀 똑똑해보였는데 일이 끝났다고 갑자기 다시 조금 멍청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실례되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 말로 하진 않았으니까.
"레몬 사탕이랑 벌레가."
"아. 타려면 사탕을 먹는 편이 편할 텐데 레몬사탕이 그렇진 않단 말야. 그리고 조용히 이야기 하고 싶어서 일부러 자동차로 가려고 했어."
"할 말이라도 있나봐."
"뭐...그렇지. 그런데 할 말은 나보다 네가 더 있다고 생각했는데. 궁금한 거 있어? 이름 말고. 답해볼게."
"이름은 왜 안되는데?"
"알려주기 싫어서."
뒤끝이 길다. 이 인간의 뇌가 궁금하다. 그래서 몰래 심리학 판정을 굴렸는데 유감스럽게도 실패했다. 모르겠네. 취했나? 운전하고 있으니 분명 맨정신일 텐데 말이다.
"안 알려주면 어쩔 수 없지."
취한 거랑 아닌 거랑 구분이 별로 안간다. 그러니까, 상시 주정뱅이 상태 같다는 말이다.
"주정뱅이 얼룩말이라고 부를래."
"얼룩말이 뭐야? 차라리 판다라고 해."
"알았어. 주정뱅이 판다. 너도 그 세뇌실을 거쳐왔어? NPC는 아니잖아."
얼룩말보다 판다가 좀 더 귀엽게 생기기는 했다. 인기도 더 많고.
"지금은 안 취했는데. 난... 거치긴 했어. 했는데... 누구랑 거래를 좀 해서 괜찮아."
"누구랑?"
"신? 오해하지 말고 들어. 나 사이비 아니고... ...어디부터 설명해야 하지. 일단 여긴 드림랜드라는 곳의 TRPG시나리오 구역이거든, 여기서 너도 알다시피 난 탐사자잖아? 그럼 분명 플레이어도 필요할 텐데... 난 그 신의 전용 탐사자가 되는 걸로 기억은 멀쩡하게 두기로 한 거야."
오해하지 말라고 해도 말만 들으면 누가봐도 사이비였다. 상황이 상황이니까, 그런 장난질이나 영업질을 하지 않는다는 거야 알지만.
"드림랜드? 그 신이 플레이어야?"
"꿈 속 세상이려니 하면 편할걸. 나도 자세한 건 잘 몰라.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으음~ 맞아. 그 사람이 플레이어."
"컨트롤러를 놓친 건 아니었나, 그럼."
영락없이 자기가 설정한 캐릭터에 끌려다니는 흐물흐물 오징어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을 했었다. 아니었구나.
"신 정도가 뒷배가 되어주지 않으면 이런 걸 어떻게 하겠어. ...는, 그건 나도 할 줄 몰랐지만."
'그거'라면 교도소에서 있었던 그 일을 말하는 모양이지. 할 때는 당당하더니, 뒤늦게 생각하니 부끄러웠나보다. 더 부끄러우라고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봐줬다. 수치심이 없는 인간인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았나보다. 더운지 창문을 여는 게 보였다.
"부끄러워?"
"네가 부끄러운 거 아니고?"
"그건 맞지만. 술 깨니까 너도 수치심이란 걸 되찾은 것 같아서. 몸을 막 더듬으면서도 뻔뻔하더니..."
"원래도 수치심 있었어. 그게 더듬은 거야? 기계 찾으려고 뒤진 거지. 진짜 더듬고 싶었으면."
노려봐도 하나도 안 무서웠다.
"싶었으면?"
"이렇게 했어."
성추행범이 운전대를 대놓고 마구 쭈물거렸다. 본인이 있다고 주장한 수치심을 찾아주기 위해 가만히 바라봐주었다. 앞만 보고 운전하는 바쿠스의 옆 얼굴이 보인다.
"응... 바쿠스는 쾌락의 신이라고도 하더라."
그리스로마신화의 신들은 주직 말고도 여러 상징을 겸직하고 있다. 바쿠스, 그러니까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인 동시에 쾌락의 신이기도 했고, 또 기억 안나는 여러가지의 신 역할도 떠맡고 있었다.
"자꾸 그러면 나 사탕 먹으면서 운전한다."
그렇게까지 수치심을 잃어버리고 싶어해서야, 안될 일이다. 한참 그렇게 앞만 보고 운전하던 바쿠스는 갑자기 어느 곳에서 차를 세웠다. 위치를 살펴보니,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였다.
"다 왔는데.. ...내가 너 데려가기 전에 물어봤었지. 도와달라고. 기억해?"
"응."
"물론! 거기 건물에서도 도와달라고 하긴 했지만."
바쿠스가 어색하게 웃는다. 크하하 거리는 것만 보다가 저렇게 웃으니 또 낯설다.
"또 도와줘. 이게 마지막이야. 정말로. 시나리오 대책위원회의 입김이 너무 세졌어. 나 혼자서는 모든걸 하기 힘들어. 물론.. 꽤 위험할 거란 건 알고있고.. 내가 약한 걸로 너를 끌어들이는 것 같아서 미안한데... ...누가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라고 했어서."
무엇이든, 혼자서 다 해낼 수 없는 법이었다. 인간의 대부분은 홀로 완전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간은 무리지어 살 필요조차 없었을 테니. 혼자서 어렵다면 도움을 청하면 된다. 강제한다면 부당한 일이 되겠지만, 부탁은 나쁜 게 아니었다. 오히려 하지 못하는 쪽이 현명하지 않은 거지. 아집이고, 고집이고. 결국에는 스스로를 좀먹게 만드는 병이다.
"네가 싫다고 하면 혼자 할게. 신고해도 괜찮아. 애초에 내가 지휘하는 거긴 그렇게 약한 곳이 아니라 버틸 수 있거든."
"그렇게 할게. 뭘 하면 되는데?"
"대답 하난 시원하네. 그런 점이 맘에 들어서 스카우트 한 거지만?"
바쿠스는 숨을 후, 하고 내쉬더니 주머니에서 캔을 하나 꺼냈다. 꽤... 큰 사탕통 같은 것이었다. 그는 검은 색 사탕들을 모조리 탈탈 털어 손수건에 싸 내게 쥐여줬다.
"이게 뭔데?"
"이건 사람들의 세뇌를 풀 수 있는 사탕들이야. 이걸..그러니까, 내일 너희 구역 급식소 주방에 가서 내 동료한테 전달해. 그럼 내 동료가 음식에 그걸 넣을거고, 그럼 모든게 끝나. 너도 자기 전에 하나 먹어. 기억이 되살아날테니까. 언제까지나 잊고 살 순 없잖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가짜 뿐이다. 그래, 마치 우리가 만들어온 시나리오처럼. 이 모든 것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였다. 안락하다고 해도, 아무리 휘황찬란하다고 해도 나는 거짓을 쥐고 살아갈 수는 없었다.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것들이 궁금하기도 했고. 그립기도 했고.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그리워한다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그랬다.
"그리고... 아."
바쿠스는 박수를 한번 치더니 나를 쳐다봤다. 유쾌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잇는다.
"네 혀 밑에 있는 폭탄! 맞다. 그거, 폭탄 아니야."
유감스럽게도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신경쓴 적도 없긴 하다.
"정확하게는 폭탄이 맞긴 한데~ 이 곳의 모든 보안시설들을 한 방에 끝장내는 폭탄이지. 내가 직접 메인 컴퓨터에 꽂을 거였는데, 어디에 숨길지 몰라서 네 혀 밑에 숨겼어. 내일 급식소에 사탕들을 넣고 나면, 나한테 와. 내가 회수해갈게."
"...알았어."
남의 입 안을 보관소로 쓴건가. 역시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제 혀 아래에 숨기는 게 차라리 더 안전할 것 같은데.
"대책위원회에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고. 뭐어... 들키면, 꼬리 잘라도 상관없어. 내가 협박했다고 해."
대책위원회 만큼이나 조금 대책없는 바쿠스가 생글생글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다. 그래도 나는 상식있는 납치피해자니까 마주 손을 흔들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방중 내가 떠나온 그대로다. 시계를 보면 시간은 벌써 새벽이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났었나. 내일도 정시 출근을 해야 할 텐데. 잠을 많이 자는 편은 아니긴 했지만 내일은 중요한 일도 있고 하니 씻고 자기로 했다. 공장에서 구른 몸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바쿠스의 말대로 검은 사탕도 하나 먹고, 양치질까지 깔끔하게 한 뒤에 침대에 몸을 눕힌다. 바쿠스가 작다고 눈치를 줬던 그 1인용 침대에. 사탕은 이상하게도 별 맛이 없었다. 의아하게 천장을 보고 있노라면, 살살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아, 그 인간. 설마 일부러 이런 걸 준 건 아니겠지. 이제까지 보여준 것들을 보면 일부러는 아니겠지만 괜히 그런 생각이 하며 깜박, 잠에 빠졌다.
5.
눈앞에 뿌연 영상이 펼쳐진다. 꼭 세뇌실에서 봤던... 아니, 아니다. 그것과는 달랐다.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이건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가 아니라 진짜 나의 일생이다.
골목을 쏘다니며 축구공을 차는 게 하루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던 유년시절. 이후, 배부른 이들에겐 유감스럽기만 했을 지하 실험실의 그 일, 열차 연기 너머로 지나가는 청소년 시절, 지금까지 자라왔던 것. 맞서 싸웠던 고성. 숲 속, '우리'의 집. 음식점의 골목. 바닷가. 유성이 내리던 들판. 저택의 지하. 마지막 기차칸. 요란스러운 백화점. 꿈 속의 토끼. 그림자가 없던 저택. 사냥꾼의 집. 기묘한 요리점. 설산의 게스트하우스.
평범이 익숙해질 무렵, 갑작스레 납치를 당한 일. 이상한 축제. 고래의 꿈속. 이후 보관실에서 '보관'되었던 일. ...나와 몇몇 사람들은 세뇌실로 끌려가고 있다. 다른 이들은 모두 공포에 질린 채 몸을 벽에 최대한 붙이며 떤다.
"있지, 키르니."
갑작스럽게, 바로 뒤에서 누군가 뒤에서 속삭였다. 익숙한 목소리, 잊을 수 없을 목소리. 모두가 두려움과 불안함을 내비치고 있는데도, 너만은 빛나는 눈을 하고 있다.
"여기서 나갈 거지?"
네가 손을 잡아온다. 어떤 대답을 할지 알고 있는 듯한 태도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던 것 같다. 너는 입술을 꾹 깨물더니 무언가를 결정한듯 위를 보며 중얼거리고는, 다시 나를 보았다.
"그래. 알았어."
"내가 꼭, 나가게 해줄게."
"약속했으니까 기다려."
무어라 답할 새도 없이 다시 고개만 끄덕였다. 이후 속수무책으로 세뇌실로 향하고, 구겨지듯 세뇌 기계 안에 들어갔다. 그 이후는... 그래,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나았을 일들다. 끔찍한 기억들이니.
...꿈이라고 해야 할까. 기억을 모두 확인하고 잠에서 깨니 시간은 이미 오전이었다. 따르릉. 요란스럽게 알람이 울린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아프다. 아주 오랜 꿈에서 벗어난 기분. 그리고, 꿈으로 돌아온 기분. 이곳은 나의 집이 아니다. 여기엔 너도 없고, 아스톨프도 없고, '우리'의 기억이 새겨진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나는 이곳에서도 살아왔지만... 그 시간 역시 나의 삶이지만, 결국 아무 것도 모른 채 꼭두각시처럼 휘둘리기만 했을 뿐이다. 어느 바닷속의 도시에서 처럼. 뱀파이어들이 살던 외딴 섬에서처럼. 이런 일들은 정말 싫은데도. 언제고 과거를 잊지 말라는 것처럼 반복되지. 나는 나의 의지로 살아가고 싶은 인간일 뿐인데 그게 좀처럼 잘 안돼. 단지 그것만이 슬퍼서.
알람을 껐다. 거짓 세계에 경종을 울리러 갈 시간이다. 봐. 이런 세상이어도 태양은 뜬다. 숨겨진 진실을 고하러 가야지. 영웅이 모두를 구하러 왔으니.
테이블의 검은 사탕을 손수건에 곱게 싸 주머니에 넣고 출근 준비를 했다. 어깨의 짐이 무거웠다. 어제와는 정 반대로, 거대한 짐이 지워진 기분이다. 직장에도 도착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직장 동료들이 인사를 해온다. ...이 사람들도 전부, 세뇌당해서 이곳에서 자랐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일까.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본래의 삶이 있던 사람들. 모두 돌아가야 할 곳이 있을 텐데. 이런 식으로 휘둘리는 것은, 휘둘리는 삶은. 어쩐지 위화감이 느껴진다. 어제의 직장과 오늘의 직장은 공기 자체가 다르다. 나의 눈이 달라진 탓인가. 주머니 속의 사탕들만 만지작거렸다. 해야 할 일이 있다.
우선 그의 부하가 있다는 곳으로 가야지. 급식소의 주위를 둘러보니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입는 옷이 보였다. 위장을 하고 숨어들어가니, 내게 눈짓을 보내는 직원이 보였다. 네가 말한 사람이겠지. 사탕이 담긴 손수건을 몰래 넘겨주자 직원은 익숙한듯 사탕을 주머니 안에 넣는다. 이제 무얼 해야 할까. 일을 끝마쳣으니 어디선가 또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너를 찾고 있으니 시나리오 대책위원회의 사람들이 내 쪽으로 몰려온다. ...어쩐지 흉흉한 분위기다.
"리베르테 씨 되십니까?"
"예."
"시나리오 대책 위원회 본부에서 나왔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지금부터 저희와 함께 동행해주셔야겠습니다."
"왭니까."
"질문이나 이견은 받지 않습니다. 말로 할 때 저희와 함께 해 주시죠."
그와 동시에, 내 손목에수갑을 채운다. 공권력을 쥐고 있는 것들은 대체로 이모양이다. 자신들의 모든 행동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며, 다른 이들이 그것에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권력이란 결국 위임받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본래 제 것이었다는 것처럼 휘두른다. 협력과 보호의 목적은 전도되고 남는 것은 폭압의 수단 뿐이다. 부당함에 고개를 숙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순순히 따라가는 편이 낫겠지. 사탕은 이미 건네주었으니, 끌려간다고 빼앗길 일은 없을 것이다.
도착한 곳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흉흉한 글씨로 적혀있는 지하 2층이었다. 위원회의 두 명은 나를 딱 봐도 흉흉해보이는 방에 데려가 앉히고는, 의자에 묶는다. 어떻게 봐도 취조실이다. 이 곳에는 전혀 들어올 이유가 없어서 모르고 있었는데, 이런 용도였나 보지. 웃기지도 않네.
한 명은 문 앞에, 다른 한 명은 내 앞에. 살벌한 분위기에, 내 앞에 앉은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제 밤, NPC들을 ‘교육’시키는 ‘학교’하나의 NPC들이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리베르테씨는 어젯 밤 어디에 계셨습니까?"
학교인가. 그쪽은 배움을 그런 식으로 선물하나 보지. '높으신 분들'과 그들의 개는 또 한가지 특징이 있는데, 저들이 하고 있는 일이 단순한 권력놀음에 폭력이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꼭 되도 않는 이름으로 포장을 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런다고 썩은내가 감춰지지도 않는데. 자기세뇌를 하기에는 퍽 괜찮은 방법인가 보다.
"밤에 집에 있지, 어디에 있겠습니까."
새벽에 가까운 시간이긴 했지만 집에 들어가서 잘 잤으니 거짓말은 아니긴 했다.
"그렇습니까? 그렇지만 ‘학교’의 CCTV에는 탐사자씨와 당신의 모습이 찍혔는데요. 지금 탐사자 씨도 당신 옆 방에서 취조를 받고 있습니다. 증언이 일관적이지 않으면… 당신에게 죄가 뒤집어쓰일수도 있겠네요."
"닮은 사람인가 보죠. 흔하지 않습니까. 저 같은 사람은."
"급식소에서는 무엇을 했습니까? 아, 아니. 그건 답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미 당신과 접선한 조직원이 만든 음식은 전량 폐기처분했으니까요. 테러를 저질렀다고 보아도 되겠습니까?"
"하는 짓이 똑같네."
이렇게 전형적으로 특징을 보여줄 필요는 없는데. 저들에게 반기를 들면 '테러'지. 자신들이 밟고 있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벗대로 규정하고, 매도하고. 결국 짓밟힌 이들이 손에 무기를 들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한다. 어쩜 이렇게 다른 것이 없을까. 당신들은.
"할 말은 없는데. 내가뭘 말해도 생각하고 싶으대로 취급할거잖아."
"할 말이 없다? 계속 그런 식으로 나오시면… 저희도 어쩔 수가 없네요."
그는 책상 서랍에서 주사를 하나 꺼냈다. 주사기를 톡톡 치고, 액이 잘 나오는지 확인한 다음 내 팔을 강제로 책상 위로 올린다.
"당신 같은 사람들은 늘 그런 변명을 하더라. 어쩔 수가 없었다고."
"자백제입니다. 리베르테씨가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지 않으니, 방법이 없습니다."
어쩔 수 있을 인간이면 애초에 저항을 안한다. 얌전히 맞아줄리가 있는가? 설마.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내가 설령 저 주사를 맞게 되더라도 네 놈의 얼굴에 주먹이라도 내다 꽂을 것이다. 팔을 빼내는 데는 성공했는데, 놈들 둘이 성가시다는듯 내가 묶인 의자를 걷어찼다. 큰 소리가 나고, 옆의 벽에 몸이 굴러박힌다. 되다만 돼지들이 꿀꿀거리며 듣기 싫은 소리를 몇 번 내고, 내 팔을 다시 끌어올릴 즈음. 취조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신입으로 보이는 새끼 돼지 한마리가 숨을 몰아쉬며 다른 두 놈을 쳐다봤다.
"크, 크, 큰일 났습니다!!!"
"위 층 NPC들이… 기억을 모조리 되찾았습니다!!! 현재 난리입니다. 바깥으로 나가겠다고 폭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게!! 어떻게 기억을 되찾았다는거야!! 분명 탐사자와 한 패가 만든 음식은 전량폐기했을텐데!!"
"그게…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식수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놈들이 머리를 감싸쥔다. 잠깐 내 쪽을 쳐다보더니, 더이상 신경쓸 겨를이 없는지 후다닥 바깥으로 나갔다.
"멍청이들."
저렇게 어설픈 놈들에게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떠나가는 소리는 점점 멀어진다.
" 보안 확실히 점검해. 아무도 이 구역 안에서 못 나가게 해!! 다시 미고들을 불러내 ‘공장’으로 보낸다. 재세뇌시키면 어떻게든 쓸 수 있어!! '그분들'의 심기를 우선시하는게 먼저다!!"
딸랑거리는 소리가 너무 커서 머리가 아프다. 나는 저런 쨍쨍거리는 방울 소리가 참 싫었다. 어쨌든 지금 나는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겠지만. 한참 밧줄을 풀어내고 있으면, 또다시 취조실의 문이 벌컥 열린다. 그리고 나타난 건,
"아, 무슨 수갑을 이렇게 빡빡하게 채운담? 키르니, 괜찮아?"
"응. 옆에 있다던 말이 진짜였나 보네."
"거기서 머리채가 잡힐 줄은 몰랐어. 몸은 괜찮아? 맞진 않았고?"
에티였다. 대충 옷을 털어내고는 네 몸을 눈으로 살폈다.
"너는 괜찮아?"
에티는 내 쪽으로 오더니 수갑도 간단하게 따버렸다. 응. 멀쩡해보이는구나. 어디서 이런 걸 배웠을까. 요즘 전직 오러는 이런 것도 배우나. 테러리스트의 소양에 가까워보이지만. 뭔가 뿌듯하게 나 유능하지? 하는 얼굴로 보고 있어서 머리를 쓰다듬어줘야할 것 같다. 은밀행동 판정을 해서 에티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내가 더 때려서 괜찮아. 것보다 지하 1층으로 같이 가자. 거기 메인 컴퓨터가 있어서 칩을 꽂음 되거든."
"그래. 너는 두 배로 돌려주는 게 특기잖아. 그래, 가자."
에티와 함께 취조실을 빠져나간다. 계단으로 향해 지하 1층으로 올라가자마자, 경비대 2명과 눈이 마주쳤다.
"이게!"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경비대를 향해 에티가 몸을 날리고, 둘이 엉켜 계단을 구른다. 이후 둔탁한 주먹질이 이어지다가, 불쑥 고개를 든 에티가 큰 소리로 내 이름을 외쳤다.
"키르니!"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아니, 내게는 더 익숙할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시선이 얽히고, 너는 속삭이듯 내게 말했다.
"나 대신 그거 부탁해. 멋있게 해 주기야."
"멋있게...는 잘 모르겠지만. 다녀올게. 에티."
가야할 곳은 명확했다. 메인 컴퓨터가 있는 곳은 지하 1층이겠지. 거기서 칩을 꽂아야 하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 1층은 울부짖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다. 우리 집으로 돌려달라는 외침이 가득하고, 경비대와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 자신의 가족을 찾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어떤 혁명도 보통 사람들이 세상의 기만을 깨닫고 목소리를 내는 데서부터 끓어오른다. 혁명가들은 그 기폭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지금은 그들을 살필 때는 아니었다. 중간쯤에 ‘메인 조정실’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런데 문득 불길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에티가 놓쳤는지 경비대 둘이 뒤를 다라붙고 있었다. 서둘러 메인 조정실에 들어섰다. 문을 쾅 닫고 보니, 방 중간에 엄청나게 커다란 컴퓨터가 하나 있다. 관리자들은 모두 자리를 비운 모양이다. 이럴 때 자리를 비우다니 생각이 없지만, 내게는 행운이다. 혀 밑에서 칩을 뜯어낸다. 버튼 속에는, 폭탄이 아니라 아주 작은 마이크로칩이 들어있었다. 이걸 어디에 꽂지. 슬롯을 찾으려고 하는 순간. 확, 하고 뒤에서 경비대 놈 하나가 나를 붙잡는다. 방해가 되니 패주었다. 다른 놈이 또 오기 전에 서둘러 컴퓨터를 훑었다. 간신히 칩을 꽂았다. 메인 컴퓨터의 화면이 마치 해킹을 당한 듯 버벅거리다가, 이후 팝업 창 하나가 올라온다.
[보안 전면 해제까지 10, 9, 8…]
카운트다운이다. 쓰러졌던 경비대가 다시 메인 컴퓨터로 달려들었다. 끈질기다. 당연한 거겠지만. 팔을 잡았는데도 뿌리쳐내고 칩을 찾아낸다. 조금 더 힘을 써서 거머리를 뜯듯 모니터에서 뜯어냈다. 이번에는 확실히 기절할 때까지 패주기로 했다. 뻑-! 머리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경비병이 잠잠해진다. 그리고 이어서,
[...3...2...1...0.]
[보안이 전면 해제됩니다.]
삐-하는 소리와 함께 메인 컴퓨터에 붉은 불이 들어온다. 그와 동시에 문이 발로 차여서 덜컹, 열렸다. 기절한 경비대원 뒤로 엉망진창이 된 에티가 보였다.
"에티, 괜찮아?"
"괜찮고 말고."
에티가 느리게 눈을 깜박거리고는 내 주변을 반쯤 본다. 이번에는 휘청거리는 발걸음이 아니었다.
"다 끝냈나 보네. 우리도 나갈까?"
"응."
에티와 함께 메인 조정실을 나서자마자, 모든 스피커에서 일제히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에티의 목소리다. 녹음해둔 건가?
[안내방송입니다. 저는 혁명단 '바쿠스'의 리더, 탐사자입니다.]
[현 시점부터 이 시나리오는 혁명단 '바쿠스'에 의해 해방을 맞이합니다.]
고개를 돌려 에티를 바라보니, 에티가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생존자 분들께 고합니다. 모두 1층으로 내려오세요. 집으로 돌아가게 해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합니다. 1층으로 내려오십시오. 집으로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해방입니다.]
"Captain's order?"
"...놀리지 마."
언젠가 본 영화가 생각나서 조금 놀려주었더니,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다. 에티가 꿍얼거리며 보라색 사탕을 꺼내기에 뺏어주었다. 아첼레란도는 금주다. 나가는 길에 적군의 시체.. 아니, 기절한 경비대들이 널려있었다.
"고생 많았어."
"기억 없으니까 좀 더 얄밉더라."
"나... 별다른 건 안한 것 같은데."
에티가 삐죽거리는 입술로 투덜거렸다. 정말 아무것도 안했냐는 눈으로 빤히 쳐다보니, 한 게 있어서 마모된 양심이 찔린다. 내가 슬리퍼를 좀 던지긴 했다. 일단 목적은 전달이었는데, 투척 판정에 실패했다고 말해봤자 소용은 없을 것 같다. 맞아도 된다는 생각이긴 했으니까.
"미안..."
"귀여우니까 봐주는 거야."
기절한 경비병들을 대충 발로 밀어내며 1층에 올라갔다. 에티의 부하로 보이는 사람들이 중무장을 한 채 사람들을 통솔해 트럭과 헬기에 나눠 옮기고 있다.
"키르니, 사탕 물래?"
"벌레 타고 가게?"
"아니... 지금 돌아다니고 있어서."
"레몬맛은 없으니까."
미치는 것보다는 포도 사탕을 먹는 게 나을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띵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트럭이나 헬기의 주위를 자세히 보면, 괴상한 모양의-버틸 만하지만- 신화생물들이 그를 엄호하려는 듯 에워싸고 있었다. 마치 특수부대 같은 느낌이다. 단원들은 모두 에티를 발견하자마자 가볍게 목례를 했고, 에티는 익숙한 듯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그렇게 빌딩에서 빠져나오자, 에티가 내게 물어왔다.
"이제 집으로 갈 수 있겠네. 기분 어때?"
방금까지 두 발로 서있었는데 영락없는 우리집 강아지다.
"과연 미래의 마법부 장관..."
두발로 서는 주문을 외워보았다.
"...자꾸 그러면 해야 할 것 같으니까 그만둘래?"
"같이 돌아갈 수 있어서 좋아."
심통난 얼굴을 하던 에티가 내 말에 애매한 표정을 한다.
"같이... 난 바로는 못 가. 다른 사람이랑 말해둔 게 있거든. 그보다, 나. 이 약속은 잘 지켰어. 봤지?"
'이 약속'이라면... 아, 기억이 났다. 세뇌실로 끌려가기 직전의 말이 떠오른다. 너라면 나의 대답이 어떨지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응, 고마워. 구하러 와줘서."
"당연한 거 아냐. 난 네가 집 말고 이상한 데 있는 거 못 봐."
에티는 어깨를 으쓱이는 시늉을 하다가 트럭과 나를 번갈아보며 손을 꿈질거렸다.
"음...있지, 키르니. 아까도 말했지만 난 바로는 못 가는데, 그... 키르니는 집에 먼저 가도 괜찮아. ...가고 싶으면?"
그리곤 뭐라 더 말하려다 말고 어색하게 어깨를 움츠렸다.
"남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같이 가자. 다 끝나고 나면. 그 때에.조금 늦어진다고 해도 돌아갈 길을 알고 있다면 괜찮아.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잖아. 이 세상에는 아직 '테러리스트'가 필요해. 그렇지?"
"그것도 있고."
뭐가 더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답지 않게 눈치를 보던 에티는 숨을 크게 내뱉고는, 제 머리를 헝크러트렸다. 털 안 빗은 아기 강아지 같아서 귀여웠다.
"뭐니. 되게 눈치보면서 싫으면 같이 갈래? 하고 꼬시려고 했는데! 하여간에, 누가 전직 테러범 아니랄까봐. 거기다 집에, 늦어도 꼭 가긴 갈 거니까. 거기 아님 갈데도 없고."
"스카우트 될 준비 되었어?"
에티가 손을 내민다. 이런 건 연출이 중요하대, 같은 알듯 말듯한 말과 함께. 연출이라면 충분하지 않나. 성공적인 전복만큼 완벽한 배경은 없을 것이다.
"그야 이런 세상을 무너트리려드는 건 특기인걸."
나도 웃으며 네 손을 잡았다. 이번에도 나의 답을, 너는 알고 있었을 테지.
"경력 있는 신입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놀라울 것도 아니지 않나. 혼자 두고 돌아가는 건 뭐. 어울리는 건 아니지. 게다가 이미 한 번 했던 혁명이다. 두 번을 못 하겠는가. 나는 그렇게 혁명단 '바쿠스'에 들어가기로 했다. 아첼레란도 다음은 바쿠스. 이탈리아 땅과 인연이 깊은 모양이다. 에티는 조금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스카우트 하는건 처음이라고 한다.
"모두에게 그러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뭐라는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암만 취했어도 공사구분... ...무튼. 끝날 때까진 돌아갈 수 없는 곳에 온 걸 환영해."
본인도 확신할 수 없나 보다. 아직 마음 속에 조그마한 의심을 남겨두기로 했다.
"아휴. 왜 이렇게 잊을 만 하면 일에 휘말린담."
푸념조로 말하던 에티가 악수하던 손을 휘릭 풀고는 옆구리를 콕 찔렀다. 팔짱 끼고 싶은데 참았다고 속닥거리는 소리가 함께 들려온다. 새삼스럽게 굴고 있지만 남들 앞에서야 저런 모습은 흔하니 넘어가주기로 했다.
반복되는 것들. 이번에도 또 이런 일인가 싶지만, 이번에는 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하느트레이나, 뱀파이어의 섬과는 다르다. 방법을 찾지 못해 혼자 떠나보내는 일은 만들지 않아야지. 쉽지는 않겠지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이전의 삶을 살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자. 앞으로 나아가자. 테러리스트답게.
'해시태그 및 로그 백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키르에티] 달을 향해 날아가는 17년 - 7학년(야간비행, 인형증정식) (0) | 2020.07.29 |
---|---|
[키르에티] 달을 향해 날아가는 17년 - 7학년(일상, 프롬파티) (0) | 2020.07.29 |
[키르에티] 달을 향해 날아가는 17년 - 1학년 (0) | 2020.07.29 |
[키르니 - 에티] 너의 곁에 잠시 머물렀던 것 만으로도 (0) | 2019.10.06 |
[키르니 - 에티] 달이 건너는 다리 (0) | 2019.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