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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니 - 에티] 달이 건너는 다리

셔츄 2019. 10. 6. 20:05





    "달이 건너는 다리라니, 풍경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

    새카만 어둠에 삼켜져 한껏 깊어진 강이었지만, 그 표면은 토게츠교(渡月橋)란 이름처럼 달의 발자국이 남아있어 곳곳이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유유히 흐르는 강과 멀리 보이는 산의 검은 단풍이 어우러져 고즈넉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단풍놀이를 하러 와서, 굳이 잎의 붉은 빛이 죽는 때를 택해 다리를 걷는 것은 아쉬울 일이었지만 그는 언제나 이런 밤의 시간을 사랑했다. 어둠 속의 고요함이나, 어렴풋하게 사물의 윤곽을 드러내는 은은한 달빛 따위가 주위를 보지 못하고 타오르는 마음 같은 것을 가라 앉혀주고는 했으니까.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빛들을 찬찬히 헤아려 본다. 둘의 뒤를 조용히 뒤따라 오던 달이 걸음을 들킨 것이 부끄러운듯 구름 속에 살짝 몸을 숨기었다.

    "꽤 낭만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붙였나봐."

    그렇지, 에티? 그는 옅은 웃음이 깔린 얼굴로 제 옆의 동행인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을 덧붙인다. 그동안 오랜 시간을 떠돌며 지냈지만,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온 것은 꽤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떠나온 곳에서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낯설기라도 한 것처럼 혼잣말처럼 내뱉는 것들에도 종종 확인의 말들이 따라붙곤 했다. 당신이 곁에 있다는 것을 아직 잊지 않았다는 듯이. 

    "여기를 건널 때에는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고 하더라."
    "절에서 빌었던 소원을 잃어버린다고 해."

    에우리디케의 손을 놓게 되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처럼 어디에나 그런 크고 작은 금기는 있는 걸까. 로빈으로부터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열 둘의 키르니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별다른 소원을 빌지도 않았었지만 안된다는 말을 들으니 괜히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에 곁눈질로만 흘긋흘긋 강물에 비친 풍경을 엿보았었고. 아직 예언이니, 운명이니 그런 불확실한 것들에도 매달리던 때였던지라 머글 세계의 미신 같은 속설에도 몸을 돌리지는 못했었는데.

    키르니는 몇 걸음 앞서나가더니, 방향을 돌려 에티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천천히 거꾸로 걸으며 말을 잇는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말이야."

    지나쳐온 풍경을 다시 눈에 담아본다. 잃어버린다면, 또 빌면 될 것이고. 신이 들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쥐어내면 그만이지. 결국 정해져 있는 미래라고 해도 어차피 포기할 수 없는 것들만을 바라고 있으니까. 

    "다음에 또 오자. 여기는 벚꽃도 예쁘거든."
    
    아직 풀리지 못한 이야기들을 남겨둔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 너를 괴롭고 힘들게 했던 시련이 있었더라도, 결국엔 네가 믿고 지켜왔던 것을 되찾을 수 있기를. 네가 삶 속에서 행복했으면 좋겠어. 너는 무너지지 않겠다고 했고, 나는 네가 그 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 여전히. 내가 조금 더 성장해서 네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너 역시 달라질 수 있을까? 나는 많이 부족하고, 너를 도울 수 있을 거란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너를 바로 보지 못한 채로 피하는 건 안 될 것 같아서. 

    너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어. 이 여행이 끝나면 내가 놓치고 있었던 너의 시간을, 생각들을 나에게도 들려줘. 

    후회하게 된다 하더라도, 또다른 미래를 약속하며.

    "그 때는 다른 소원을 빌 수 있으면 좋겠네."

     환한 웃음이 달빛 아래에서 밝게 부서졌다.